개요
삼계리 동명의 유래는 세 골짜기의 물이 합해지는 곳이므로 시내골, 이 말이 변하여 시라골, 시락골, 한자로 삼계(三溪)라 하였다. 삼계1리인 배목(舟項) 마을은 15세기말인 성종(成宗) 연간에 한 인사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 뒤 17세기 중기인 인조(仁祖) 연간에 영양남씨의 남도명(南道明)이 입주하여 그 후손이 세거(世居)하고 있다. 삼계2리인 시락골은 고려말(高麗末)에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 뒤 18세기 중기인 영조(英祖) 연간에 함양박씨(咸陽朴氏) 박세옥(朴世玉)이 입주한 뒤 그 후손이 세거하고 있으며, 구렁말(九龍村)은 어느 시대인가 최씨(崔氏)가 개척하여 살았는데, 마을에 큰불이 나서 피해를 입었고 그 뒤 안동권씨가 구룡촌이라 개칭했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해군 오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운계동(雲溪洞) 일부를 병합하여 삼계동이라 하고 영덕군 창수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삼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행정구역상 삼계1,2리로 분동되어 있다. 삼계리의 위치는 동은 칠보산, 서는 인천리, 남은 오촌리, 북은 수리가 있다. *구렁말(九龍, 구롱말) : 삼계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함. *국골(菊谷, 굴곡) : 장바우 남쪽에 있는 마을임. *동삿거리 : 구렁말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사(洞祠)가 있음. *배새목 : 국골 남쪽 냇가에 있는 마을로, 배의 형국(行舟形)인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또는 등운산의 운(雲)자를 따서 운계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