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신리 동명의 유래는 배와 같이 된 지형에 새로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배실(新梨)이라 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마을에 큰 배나무가 있어 새배실이라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신이(新梨)가 신리(新里)로 변해진 것이라 한다. 이 마을은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을 개척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 6백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를 신목(神木)으로 받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14~15세기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조선시대는 영해부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해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갈상동(葛上洞, 벼락딤)을 병합하여 신리동이라 하고 영덕군 창수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신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 행정구역상 신리리1,2리로 분동되어 있다. 신리의 위치는 동은 갈천리, 미곡리, 서는 창수리, 남은 영해면 대리, 북은 갈천리가 있다. *도리갈면 : 신리와 갈천리에 걸쳐있는 마을임. *갱빈모치(강변못) : 갈면 남쪽 냇가에 있는 마을임. *마리배기(馬峴洞) : 배락딤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말처럼 되었음. *배락딤(葛上洞) : 갈면 윗쪽에 있는 마을임. *새모치 : 새배실 북쪽에 새로된 마을임. *선새들 : 선들 옆에 있는 마을임. *매배실(碧水) : 신리의 으뜸되는 마을임. *아릿모치 : 갈면 아래쪽에 있는 마을임. *웃모치 : 도리갈면 윗쪽에 있는 마을임. *쟁골모치 : 새배실 서쪽에 있는 마을로 재령이씨 재궁(齋室)이 있음. *정자모치 : 도리갈면 북쪽에 있는 마을로 무안박씨의 자려(紫廬) 박재만(朴載萬)이 창건한 도천정 (道川亭)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