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인량리 동명의 유래는 예부터 명현(名賢)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어진 분이 많이 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뒷산의 지형이 학(鶴)이 날아갈 듯한 형국과 같다 하여 나래골, 또는 익동(翼洞), 비개동(飛蓋洞)이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나라골, 한자로 국동(國洞)이라고도 했다는 설이 있으며, 일설에는 삼한(三韓)시대에 우시국(于尸國)이라는 부족국가(部族國家)의 도읍지에서 나라골 즉, 국동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해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상동(仁上洞), 인하동(仁下洞)을 병합하여 인량동으로 하고 영덕군 창수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인량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 행정구역상 인량1,2리로 분동되어 있다. 인량리의 위치는 동은 병곡면 사천리, 서는 가산리와 신기리, 남은 들을 지나 멀리 영해면 원구리와 마주하며, 북은 칠보산이 있다. *강학소(講學所) : 인량리 동쪽에 있는 마을임. *사당골(舍堂谷) : 웃나라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임. *세원모치(新院) : 강학소 남쪽에 있는 마을로 신원이란 원집이 있었음. *아랫나라골(아릿마) : 나라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