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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목은이색산책로 |
작성자 |
admin |
등록일 |
2012-03-03 오후 8:48:48 |
조회수 |
3334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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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이 낳은 문인을 따라, 발걸음따라 목은이색산책로
- NA : 영덕이 낳은 문인을 따라, 발걸음따라 - 목은이색산책로
- 문화해설사 : 목은이색산책로는 목은이색선생이 태어나서 자라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에 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입니다. 산책로와 이어지는 목은이색기념관 앞의 넓은 터는 그가 나고 자랐던 생가지터죠. 괴시마을 또한 그의 외가가 처음 마을에 들어와 살게되면서 생겨난 마을인데요, 이렇게 목은이색 선생의 사셨던 흔적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목은이색기념관과 산책로에 오셨습니다. 여: 우리가 얕게 알고 있는 것보다 실은 훨씬 대단하시고 존경받으실만한 분이시죠?
- 문화해설사 : 그럼요.. 고려말기의 뛰어난 문인이요 학자라는 사실 외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죠. 아버님인 가정공께서도 23세의 이른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신 후, 바로 이곳에서 선생을 낳아 기르셨어요.
- 여자 : 정말 이곳에 서 보니.. 선생께서 유난히 빼어나셨던 문학적인 소양이 갖춰질만한 곳이구나 싶어요.
- 문화해설사 : 그렇죠. 14세의 나이에 지금의 공무원 시험인 진사에 수석을 하고, 16세의 나이에 별장이란 벼슬을 다셨어요. 요즘 말로 영재이셨던 것 같아요 (웃음) 이후로는 그칠 줄 모르는 문인벼슬을 이어가세요... 26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원나라에 들어가셔서 거기서도 장원급제하시고, 황제가 친히 주관하는 전시에도 2등을 해요. 외국인으로서는 전례가 없었을 거에요. 계속 원과 고려를 오가며 중요 직책을 두루 겸하면서 두 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시죠. 시대가 낸 문인이자 관료라 할 수 있었죠.
- 여자 : 네.. 무엇보다 전 고려의 충절을 대표하는 분이라는 데 감명을 받아요. 영덕은 동해의 기상을 받아서인지 특히 의로운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 여자Na :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여말 삼은(三隱)의 한 분이시며,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시는 목은 이색선생! 유·불·선 모두에 조예가 깊어 유교의 입장에서 삼교를 융합하고, 훗날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룬 권근. 길재. 정도전 등의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셨다. 특히 고려를 지키려했던 불사이군의 충절은 후세에 높은 귀감이 되고, 문장의 조종 이란 위대한 칭송을 받은 시인이자 대문호로, 고려 말기의 학문과 정치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 지금은 표지석과 동상이 그의 얼과 자취를 대변하고 있지만, 목은이색기념관과 산책로에는 그가 품은 이상만큼이나 넓고 고결한 선생의 기상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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