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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역사문화권 가운데 유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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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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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제안형

Contents

영덕 역사문화권 가운데 유교적 정신문화관련지역을 코스로 제안

Planning

영덕의 역사,문화와 관련 지역들 중 유교문화권을 이해하고 재조명하여 코스로서 제안한다.

Ra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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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불교문화탐방 코스

1. 유교문화권[조선중~후기]

괴시리전통마을(조선역사전통)~인량리전통마을(역사전통)

2. 불교문화권[통일신라~ 고려말]

유금사(통일신라역사)~나옹왕사반송유적지(인물역사)~장육사(고려인물역사)

영덕은 유교문화의 본산지이다.
특히 영해부지에 의하면 인량리는 팔성종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예부터 풍속이 순후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고, 효행과 학문이 높은 선비가 많아 벼슬이 끊어지지 않으니 부내에서 으뜸가는 동리라 하였다. 광해7년(1615)에 군내에서 처음으로 향약을 제정, 숙종3년과 1927년에 규약을 시대에 맞게 중수하여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기미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의병으로 구국에 참여하신 분이 이루 헤아릴 수없으며 현재도 많은 인재가 각 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안동 못지않게 예를 숭상하고 풍속이 엄격하다 하여 '작은 안동'이라고 불리던 영덕의 내재된 정신 기반 아래 차차 형성돼온 인량리전통마을과 괴시리전통마을을 통해 우리나라의 유교적 정신문화의 기반이 된 소안동 영덕을 재조명해 본다.
괴시리전통마을/ 영해읍 괴시리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동해 양반마을의 고풍스런 얼이 담긴 괴시리전통마을.
학식과 인품으로 모범적인 영양남씨 집성촌에는 물소와 서당, 괴시파종택 등 14점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망일봉을 끼고 영해평야를 바라보는 마을. 마을 북쪽에도 도랑이 있어 옛날에 '호지촌'이라 불리었던 이 마을은 고려말 대문호이자 충신인 목은 이색의 고향이자, 생가지터의 마을이다. 지금은 연꽃과 두 그루 묵은 고목, 그리고 200년된 옛 길 등이 그대로 남아 조선후기 영양남씨 집성촌의 반촌의 형태만 남아있지만 유지되는 30여 가옥들에는 살림집들도 남아있어 시대상을 반영한 주거의 모습에 눈여겨 볼 수 있다. 물론 주말을 이용한 고택체험 집에서의 체험들과 한옥민박 등으로 고택의 따사로운 정겨움에 푹 빠져볼 수도 있고 말이다. 조선후기의 물소와 해촌고택 등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곳 외에도 여러 고택의 형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경북지방 양반가의 주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반촌, 괴시리전통마을이다. 마을위쪽으로 이어진 목은이색기념관에는 고려말의 충신이자 재상, 뛰어난 문인 목은이색의 생애와 사상을 집결해놓은 홀연한 그의 터를 만날 수 있고, 블루로드가 이어진 뒷길은 목은이색산책로에서 대진의 관어대와 고래불까지 이색선생이 유년시절 흔적을 더듬어볼 수도 있다.
인량리전통마을/ 창수면 인량리
선비의 문과 도가 전통으로 지켜져 내려오며 수많은 인재들이 각지에 배출되어온 영덕 最古의 전통
500년 전통과 얼이 담긴 인량리전통마을
장육사에서 다시 돌아나오면 창수면 인량리로 가는 길이 보인다. 또는 영해사거리에서 오른쪽 창수?영양방면으로 남 918번 지방도로를 따라 2.2km가 원구교를 건너면 길 오른쪽에 인량리로 가는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2km정도 가면 인량리 입구 인량 버스정류장이 보이면 바로 이곳부터가 인량리 전통마을의 시작이다. 안동 못지않게 예를 숭상하고 풍속이 엄격하다 하여 '작은 안동'이라고 불리던 영덕의 면면이 스며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전인 중종 무렵에 들어서기 시작한 이 마을은 북쪽으로 멀리 태백산맥이 둘러섰고, 남쪽으로는 들판이 탁 트여서 들판 가운데로 송천이 흐르고, 마을은 동서로 길게 누워있다.
마을 전체에 중요민족자료 168호인 충효당을 비롯 몇백 년 해묵은 기와집이 여러 채 남아있고 마을 입구엔 농촌전통체험마을인 나라골보리말체험학교가 있다. 수백 년 된 기와집들로 이루어진 전통마을.. 일찍이 어질고 인자한 현인들이 많이 배출되어 마을 지명까지 '인량리'인 이곳이 영덕의 정신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영덕은 또한 나옹왕사를 발굴한 불교문화의 소산이 담긴 곳이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유금사로부터 영덕에 내재된 불교문화의 깊이를 이해하기위해 나옹왕사반송유적지와 장육사까지 불교문화의 흔적을 되짚어보다.
유금사/ 병곡면 금곡리
통일신라시대 세운 삼층 석탑이 창건 당시의 유일한 건축물로 남아 장화부인과 마의 태자의 사랑의 메아리를 담아 전해오는 곳!
칠보산으로 향하는 산길을 쉼 없이 오르고 내리다 보면 중턱 즈음, 작은 산촌마을이 보이고 그 길을 굽어 들어가면 신라시대 창건된 소담한 한 채의 절이 나온다. 소박한 풍채의 유금사_ 비록 소실되고 유실된 후 대부분이 복원되어 태초의 모습이라곤 삼층석탑이 전부인 듯싶은, 그러나 꾸미지 않은 절의 자연스러움에 매료될 수 있는 곳이다. 또 국운이 쇠한 신라를 더 이상 지킬 수 없음에 한스러움 죽음을 택한 마의태자의 슬픈 운명과,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의 장화부인과의 슬픈 사랑의 전설이 감도는 곳이다. 법당 뒷마당에는 국가지정보물인 유금사삼층석탑이 역시 유금사를 닮아 소박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형태그대로를 보인다.
나옹왕사반송유적지/ 창수면 신기리
나옹왕사가 출가 전 반송을 꽂아 유명해진 나옹왕사 반송유적지는
하늘의 비호를 받고 살아나 훗날 고려 말 우왕의 책사로 나라를 다스린 나옹왕사의 일대기가 담겨있다.
영해사거리에서 창수, 영양 방면으로 난 918번 지방도로 따라 5.6km정도 가면 창수 면소재지인 신기리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 바로 나옹왕사가 출가 전 반송을 꽂아 유명해진 나옹왕사반송유적지가 있다. 1320년, 이 창수면 가신리 불미골 이 근교에서에서 범상치 않은 태몽의 나옹왕사(1320~1376)가 태어난다. 가난하게 살다 세금마저 내지 못해 끌려가는 어미 뱃속에서 가까스로.. 그가 태어난 곳은 바로 영해부 관가로 끌려가는 길의 시내가- 까치소였다. 출생과 동시에 어미를 잃은 핏덩이를 수백 마리의 까치들이 둘러싸 보호하고 있었다니, 하늘의 비호를 받고 살아난 이 아기가 바로 훗날 영해를 빛내고 고려말 나라를 쥐고 흔든 왕사가 된 것이다. 우왕이 즉위한 후에 '왕사'로 봉해지는데 이는 그의 32 제자 중 최고였던 무학대사에까지 영향을 준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이어진 지공-나옹-무학의 3대 고승은, 인근 나옹왕사가 창건한 장육사의 홍련암에 모셔져 있다. 물론 나옹왕사는 자기가 태어난 곳 가까이에 최초 터를 잡고 사찰을 마련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장육사였다.
장육사/ 창수면 갈천리
구름이 쉬어가는 운서산자락에 고려시대 나옹왕사가 창건한 절로 유명한 장육사.
인간사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자연과 벗하며 마음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된다.
신기삼거리- 나옹왕사반송유적지에서 다시 오른쪽 오촌리로 난 920번 지방도로를 접어들면, 양 옆으로 높낮이가 서로 다른 산들에 에워싸인 채 한참의 산길을 달리면 창수면 갈천리가 나오고, 이 갈천리 가을면산, 즉 운서산 기인 여운 아래, 숲 좋고 물 맑은 곳에 바로 장륙사가 있다. 서기 1355년에 나옹왕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진 이곳엔 유형문화재 제138호 대웅전과 보물 제993호로 지정된 건칠보살좌상 등 4점의 문화재와 보물이 담겨있다. 영덕에 위치하지만, 영남의 동해안-포항, 청송, 영양, 울진에 이르기까지 경북 동해안 유일의 템플스테이 사찰이다. 운서산세 그윽한 정취 속에 숲좋고 물맑은 자연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사찰체험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