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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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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로 상세정보

관광지명

유금사

위치

병곡면 금곡리

권역

역사문화권

TEXT유형

기사형

내용

유금사,유금사에 얽힌 일화, 유금사삼층석탑

기획의도

해발 810m 칠보산 기슭에 지은 사찰로, 삼국시대 금이 많이 나 금을 채광한 지역이라해서 유금사인 이 사찰에는 국가보물인 유금사삼층석탑과 탑 속 금동불 등이 발굴된 오래된 절로서 영덕에서도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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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테마여행 메인이미지

사색에 잠긴 칠보산을 말하다 -
금과 지네, 그리고 사랑의 기인 메아리 유금사
자신이 지켜가야 할 신라의 패망을 차마 눈뜨고 못 봐 삼베옷에 초근목피를 택한 마의태자의 슬픈 운명을,
불자의 사랑으로 극복하려다 자신의 목숨마저 마감해버린 장화부인의 슬프고도 처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꾸미지 않은 절의 순수함과 맞물리어 기인 메아리로 여울진다.
조금 왜소하긴 하지만 칠보산으로 향하는 산길을 쉼 없이 오르고 내리다 보면 중턱 즈음, 작은 산촌마을이 보이고 그 길을 굽어 들어가면 소담한 한 채의 절이 나온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창건되었다 전해지는, 사찰이라기 보단 절집에 가까운 소박한 풍채의 유금사_ 그 사적 의의만 가지고는 이 절을 품어 안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비록 소실되고 유실된 후 거의가 복원되어 태초의 모습이라곤 삼층석탑만이 전부이지만, 소박하고 무척 인간적인 절의 모습에 반할 마음의 준비만은 필요하다. 화려한 절은 그 웅장한 멋에 반하고, 소박한 절은 인간미에 반하는 것일까?
대나무가 많아 특히 지네가 많이 나타난다는 유금사는 지네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국운의 쇠락으로 자신이 지켜가야 할 신라의 패망을 차마 눈뜨고 못 봐 삼베옷에 초근목피를 택한 마의태자의 슬픈 운명을, 불자의 사랑으로 극복하려다 자신의 목숨마저 마감해버린 장화부인의 슬프고도 처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꾸미지 않은 절의 순수함과 맞물리어 기인 메아리로 여울진다.
대웅전 뒤쪽을 향해 절의 중앙부로 접어들면 통일신라시대 세운 삼층 석탑이-창건 당시의 유일한 건축물로 남아있고, 대웅전에는 최근에 봉안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그밖에 향로전, 산신각 등의 건물이 소박한 촌절을 구성해주고 있다.
유금사삼층석탑 (국가지정 보물)
유금사 법당 뒷마당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높이 3.2m에 해당된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층의 체감률과 기단부의 크기가 안정감을 주고 있다. 석탑의 기단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있고, 갑석 상면에 각 형의 2단 괴임이 있어 윗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아래·위층 기단은 네 귀퉁이와 각 면의 중앙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층마다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있을 뿐 다른 꾸밈은 보이지 않는 소박한 모습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서 느리게 들려 있다. 상륜부(꼭대기)는 둥근 돌을 차례로 얹어 놓았는데, 훗날 보충한 것으로 탑과는 약간 부조화스러운 일면이 있다. 각 층의 크기가 줄어드는 정도가 적당하며, 적당히 큰 기단부로 인해 나름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각 기단의 면 가운데에 기둥이 하나씩 새겨져 있는 것과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4단인 것 등을 감안해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금사 전설 따라잡기 …
  마의 태자와 장화부인의 사랑, 그 애달픈 진실은?
유금사의 부속암자로 금선암이 있었으니 신라말기 장화부인이 마의태자를 사모하였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이곳- 유금사를 찾아와 출가하였다한다. 비록 후세를 기약할 사랑이었으나 정성으로 축단을 설치하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마의태자가 왕위에 오르기를 간곡 축원하였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신라 본거지로부터 소식이 오거늘, 신라는 결국 패망하고 실의에 빠진 마의태자가 금강산 등지로 유랑하다 비명횡사 했다는 비보가 있자 장화부인은 축단 앞에서 통곡하며, 마의태자가 극락왕생 하기만 이라도 축원하면서 몇날며칠을 잠과 식음을 전폐한 채 애태우며 빌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이를 안타까이 여기던 신도들이 정성껏 장례를 지내주고 큰 묘도 만들어주었는데 지금도 여기엔 장화부인의 묘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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