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구미리 동명의 유래는 마을의 위치가 구비구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 안쪽에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때(661~681)에 한 선비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당시 마을 앞의 삼밭(麻田)을 이용하여 화적을 물리쳤기 때문에 구마동(仇麻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읍내면(邑內面)에 소속되어 「구미마(仇尾麻)」「구마(仇麻)」등으로 불렀으며 갑오개혁(甲午改革) 뒤인 1895년(高宗 32년) 5월 26일 칙령(勅令)에 의해 종전의 현(縣)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구미리는 영덕군에 속했으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는 부령(府令) 제111호(1913.12.29 公布)로 부군면(府郡面)을 자의로 폐합할 때 구미동이라 하여 영덕면(盈德面)에 편입되어 오다가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大統領令) 제9409호(1979.04.07 公布)에 의해 영덕면이 읍(邑)으로 승격됨에 따라 구미리는 영덕읍에 속했으며,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1988.04.30 公布)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구미동은 구미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미리의 위치는 동쪽은 화수리와 이웃하며, 남쪽은 오십천과 무릉산이 있고, 서쪽은 지품면과 경계하고 북쪽은 화림산(華林山)이 있다. *새마을 (新村) : 구미리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임 *재궁마 ·재삿마 ·수정동(水晶洞) : 15세기말(成宗 22년)에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영덕 입향조 (入鄕祖)인 신희(申禧)의 재실(齋室)인 수정재(水晶齋)가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임. *주막거리(거릿마을) : 구미리 남쪽 길가에 옛날 주막(酒幕)이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임. *개닥골 : 굴깨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행교골 : 중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남강서원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