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조선시대 성균관 진사를 지낸 면운재 이주원(1714∼1796)이 영조 26년(1750) 오촌에 대대로 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특히 한말에 영덕지역 의병을 대표하는 이겸호는 면운재 공의 7대손으로 독립운동 당시 이 집을 본거지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ㅁ자형의 정침만이 남아 있으나 원래는 정침의 오른쪽에 방앗간이 있었으며, 전면에 대문채가 있어서 양반집의 일반적인 배치를 보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파손되어 모두 철거하였다고 한다. 가옥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정침과 양쪽 날개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거의 없고, 전면 오른쪽에 있는 사랑공간만 축대를 높이 쌓아 격을 높인 평면구성 방법이 보인다.